[생각] 인간의 굴레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헌법에서도 최고의 가치로서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과연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것인가. 단지 ‘인간’이기 때문인가. ‘생명’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한가. 아니면 ‘인간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인가.
‘인간’이기 때문에 존귀한 것이라면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의 차별이 있고, ‘생명’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면 보호받는 생명과 보호받지 못하는 생명들 간의 차별이 있고, ‘인간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면 양자의 차별적 요소를 모두 가지게 된다. 차별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합리적인 차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고의 규범으로 상정한 최초의 순간에는 인간의 생존만이 가장 시급하고 우선적인 당면과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생존만을 향해 달려온 결과 오히려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의 온난화 등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받게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자 분야를 가리지 않고 부랴부랴 생명존중이니, 환경보호니 하면서 인간의 생명과 생존에 대한 재해석에 여념이 없다.
현실의 규범체계인 헌법과 법률에서는 개별적 인간의 구체적인 생명과 생존을 바탕으로 한 존엄과 가치의 보호에 주안점을 둘 수 밖에 없고, 그 이상의 가치들은 주로 종교의 영역에서 더 적절하게 다루어 질 문제라고 생각한다. 종교의 영역에서는 비록 ‘원죄’를 지은 인간이든, ‘업보’의 연(緣)들 속에서 윤회의 결과이든 나약한 인간들의 최종적인 쉼터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범도 하나의 제도이듯이, 종교도 하나의 제도이므로, 모든 제도는 제도를 만든 사람들이 미리 정해둔 일정한 규칙의 한계 속에서 운영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허용된 범위를 넘어가게 되면 제도는 이미 제도로서의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며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되어 그것이 법이든, 종교든 간에 개혁의 기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타도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를 위한 최종의 근거가 또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무수한 법규범들이 생겨나서, 위력을 발하다가, 소멸되었으며, 수많은 날 동안 종교의 해석들도 또 제 각각으로 전파되면서 설교되어지고 있는 것도 일종의 생명현상으로 자연스런 일상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떤 법규범이고, 무슨 종교이든지 간에 그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으므로 늘 유동적인 유기체와 같이 사회의 현상을 반영하면서 존재하고 있다. 그 근본과도 같은 생로병사의 중심에 인간의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이러한 제도들이, 다시 굴레가 되어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기도 하고, 다시 소통을 위한 끈질긴 노력을 통하여 적절한 수준으로 재정립을 해나가면서 위험한(?) 생존을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 본질적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심때문이리라. 그 동기가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이든 ‘사회적 연대’를 위한 것이든, 그다지 크지 않은 정도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시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은 신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불신의 대상에 가까우면서 끊임없는 시험의 대상이 되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규범들이 존재의 의미를 갖는 것이고, 그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들의 운용은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없이 공정하게 적용될 때 존중받고 유지될 수 있다. 돈과 이성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평균적으로 존재하기 힘들 수 밖에 없으므로, 그 와중에도 존경받는 사람들은 대개 인내와 절제,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온갖 유혹을 내치고 바보처럼(?) 성스럽게 살고 있거나, 살다 가신 분들이다. 그런 흔적들이 지금 당장의 제도는 아니더라도 흐르는 강물처럼 일상생활에 영혼처럼 스며들어 굳어져 새로운 제도를 통하여 사회의 미래를 희망으로 밝히는 등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일가족이 가족처럼 지내온 사람들로부터 부적절한 돈거래로 인하여 수사대상에 있다. 당사자의 고백처럼 잘못은 분명 잘못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잘못들이 엄정한 사실을 토대로 한, 동일한 제도적 기준에 의해서 차별없이 적용되고 집행되어 진실이 진실대로 밝혀져야 할 것이다.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공정한 수사만이 현재의 제도를 지속 가능한 권위로서 지켜내는 일이 될 것이며, 굴레같은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해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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