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공존의 딜레마, 개발과 보존
인류의 역사를 개발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상당한 정도의 타당성이 있는 항변일 것이다. 그것이 개선인 것인지, 개악인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삶을 닮아 선도 악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또 하나의 현상인 것인지의 평가는 뒤로하고 요즘은 하루가 다를 정도로 온통 서둘러 세상을 뒤집어 놓기 바쁘다.
세계적으로는 선진국들이 산업화의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고 난 뒤안 길에 오늘의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들이 그 그늘 속에서 생존을 향한 신음을 하면서, 어떻게 보면 하루의 생존이 급한 그들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막연한 탄소배출권과 지구살리기와 같은 불합리한 부담과 고통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고,
가깝게는 지금의 종로 북쪽 첫 번째 골목길, 교보문고(광화문) 앞에서 시작해서 무교동을 지나 인사동, 종로3가로 이어지는 피(避)마(馬)길(피맛골)과 같은, 우리의 조상들과 민초들의 혼이 숨쉬던 현장들이 개발의 바람에 밀려 하나 둘씩 소리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흔히들 재래식시장이라고 말하는 우리들의 “장터”의 모습도 주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5일장, 10일장 등에서만 맛볼 수 있는 구수한 정과 향기는 이제 아득한 추억 속에서만 자리하고 있고, 머지않아 지금의 “민속촌”처럼 가공의 흔적이라도 만들어야만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이 되고 말 것이다.
몇 번의 기차를 갈아 타고, 몇시간을 걸려서 돌고 돌아 느리게 도착해도 아무 탈없던 정선5일장과 같은 볼거리들도 지금은 교통의 발달과 환경의 변화로 예전의 정취는 점점 찾기 힘들고, 대도시 주위에서는 서로 앞을 다투어 랜드마크니 뭐니 하면서 경쟁적으로 100층이 넘는 초고층건물들을 건설하거나 계획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 이룬 흔히들 말하는 “청계천의 기적”은, “한강의 기적”이라며 열광했던 지난 날의 산업화 시대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손으로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을 다시 허물어뜨려 부숴버린 재창조의 역사임을 볼 때 또 하나의 역설적인 운명같은 자연의 순리를 확인하게 된다.
빨리 가기 위해서 만든 고가도로를 걷어내고 다시 비록 느리더라도 숨쉴 수 있는 공간의 소중함을 그나마 잠시 확인한 작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어찌보면 그와 같은 과감한 치적(?)으로 오늘의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보아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오세훈 서울시장도 환경과 도시의 조화와 미적 공간의 창조에 힘을 쏟고는 있으나, 아름다운 공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정의부터 제대로 내리는 것이 일의 순서가 아닐까 싶다. 결국 아름다움과 편리함이란 그 속에 추함과 불편함을 아울러 내포한 하나의 개념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개발의 바람에 밀려 조만간 사라질 피맛골에는 예전의 왕의 행렬을 피해 숨어든 백성들의 안식을 이야기 하듯, 지금은 숨가쁜 현실을 피해 잠시 쉬어가는 현대인들의 저무는 황혼을 풀어놓는 쉼터가 되어 있다. 그것도 조만간 사라지고 말 것이며, 사람들은 또 그리움을 찾아 어두운 거리를 방황하며 나설 것이다.
아무튼 본질적으로는 개발이란 것이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자꾸만 더 허기지게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서 다시 “민속촌피맛골”을 만들 것이 아니라 지금 부터라도 개발의 개념에는 “흔적의 보존”도 마땅히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늘 고기굽는 냄새가 코를 진동한 피맛골은, 그 냄새가 사방팔방으로 퍼지면서 왕도 그 길을 알면서 피해주는 서로를 존중하는 소통들이 만들어낸 자연발생적인 그런 역사의 현장들을 대책없이 지워버린다면 아마도 단순한 골목길 하나를 잃는 일이 아니라 영혼을 잃어버리는 깊고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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