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離別)
헤어짐이 아닌 또 다른 약속
질곡(桎梏)에 빠진 상념들이 얼기설기
뒤늦은 진실을 드러내는 최후의 안식(安息),
얇은 기억들의 두꺼운 먼지를 털고
설레임으로 채우는 기도(祈禱)의 시간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가쁜 새벽을 넘어서는
낯선 구도(求道)의 길
귀가(歸家)
집으로 가는 보도(步道),
겨울은 밤이 늘 서둘러
조급하게 밀어내는 움츠린 가슴
지하철로 가는 에스컬레이트,
내려가는 승차에, 올라오는 승객,
엇갈리지만 그나마의 동행(同行)
한가한 주유소 앞,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들,
기름통 가득, 양식을 채우고 급히 출발
내려진 셔터 속의 세탁소,
며칠 전에 맡긴 바지 한 벌은 무사한지
나대신 나를 준비해주는 댓가치고는 무난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손끝하나만으로도 자지러져
흔쾌히 나를 받아들이지, 참 쉬운 상대
불꺼진 채 잠겨진 방,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
세갈래의 바람(三風)이 위태롭게 머무는 곳
어제의 희미한 온기로
내일을 꿈꾸지
돌아올 곳 있다는 것은
또 한번의 다행(다幸)
무사 귀가(歸家)
고무대야 속의 잉어
그 위풍당당하고 장엄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초췌한 얼굴과 휑한 눈빛만
덜렁
불법 체포,불법 감금에
무언(無言)으로 항의하는 듯
오로지 묵비권(黙秘權)하나로
침묵(沈黙)하고 있구나
아무리 오랜 세월 큰 덕(德을) 쌓았어도
한순간
뭇사람들의 몸보신 탕(湯)으로
운명지워진 너,
그 좁은 감방에서
올려다 보는 하늘
너의 눈길 끝나는 곳에 머문
어색한 얼굴하나
초연히 외면하는
나의 배신
또 하나의 이별(離別)
※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의 골목시장 입구, 시골에서 새벽차로 고무대야 속에 잉어를 담아 팔러 나온 할머니가 있었다. 그 속에는 언제나 비좁은 공간이 버거운 듯, 덩치 큰 잉어 몇 마리가 몸을 비틀며 반쯤 누운 채로 흰자위 번득이며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