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2일 금요일

[느낌] 업(業)

 

 

 

 

 

그 속을 보다.

 

 

 

 

[생각] 오바마의 버려진 개를 말하다. 10 - 존재와 인식의 차이

 

[생각] 오바마의 버려진 개를 말하다. 10 - 존재와 인식의 차이



현재 미국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장으로 있는 버락 오바마와 존 로버츠, 대통령 오바마가 지난 1월 의회 신년 국정연설회장에서 기업의 선거광고를 허용한 대법원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한데 대하여 대법원장 로버츠가 어느 대학 강연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섬에 따라 묘한 갈등관계 속에 있다고 한다.


행정부와 사법부가 어떤 원인으로든 상호 견제를 통하여 균형을 만들어 가는 모습은 정상적인 일로 보이지만, 새삼스럽게 대두되는 이유는 같은 동시대를 공유한 하바드 동문이지만, 판이하게 다른 그들의 가치관의 차이 때문인 듯 하다. 오바마도 로버츠의 지적능력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심장의 온도는 낮다고 하고, 로버츠는 비판은 좋지만 예의를 지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한 세련된(?) 견제와 균형을 경험해 보지 못한 제삼자의 눈으로 볼 때는 그런 불평들조차 상당히 점잖고 부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막상 그 당시 정치인들에 둘러싸인 채 비판의 박수소리를 들어야 했던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꽤나 불편했었던 듯 하다.


두 사람의 이런 인식의 차이는 과연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유전적 기질의 탓일까? 환경적 양육의 탓일까? 아니면 둘 다인가?


개체내의 유전자의 각 선택의 과정은 하나의 개별 자아로서 그들의 존재를 큰 차이없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형성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각자의 양육환경이 개별 자아로서의 그들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또한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본다.


가난과 고난 속에 폭넓은 성찰의 과정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가까스로 운좋게 생존한(?) 오바마의 시각과 평탄하고 화려한 조건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일사천리로 승리를 만끽한(?) 로버츠의 시각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누가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외침을 더 적은 편견으로 공평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역시 견해의 차이가 있을 것이지만, 오바마의 염려대로 기업의 선거광고를 허용한 판결은 아무래도 이윤추구를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느낌이다.


그 선택에 따른 결과조차 가장 먼저 미국이 감당할 몫이겠지만, 그 폐해가 미칠 해악은 어떤 형태로든 바다건너 이 땅에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판이 그렇게 되면 우리의 기업들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노력들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그 비용은 역시 소비자의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의 악순환은 탐욕을 키우고, 탐욕은 인간의 욕망을 악(惡)으로 양육하면서 선(善)으로 포장한다. 욕망의 선순환적인 구조 속에 가려진 선(善)한 가치들을 발견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댓가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너무 늦은 발견으로 동시대에서는 향유하지 못하고 역사의 평가에 미룰 수 밖에 없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경우 혼탁한 금권선거로부터 그나마 이만큼의 정화된 제도적 성과를 이룬 것은 지난 참여정부의 노력과 역할이 컸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서울시 교육감선거와 관련된 비리의 넝쿨들을 바라보면서 그 수확의 열매들이 시들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