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일 금요일

[생각] 인간의 본성과 보편적 가치

 

[생각] 인간의 본성과 보편적 가치



세상이 나영이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9세의 아동에게 50대의 성인 남자가 저지른 만행은 대부분 언론의 일치된 지적대로 ‘짐승의 행위’에 다름아니다.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 특히 아동의 생명과 신체의 보호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분을 보면서 뒤늦게나마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잊혀지지않은 성찰들을 발견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느낌도 있다.


비록 현행 형사소송법상의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에 따라 검찰의 불항소로 1심의 징역 12년형이 선고형으로 확정되어 국민의 법감정을 거스리게 되자, 가석방을 배제한 형의 엄격한 집행약속으로 성난 여론을 무마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지 않고서 현행 제도상으로는 불가피한 결론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도 개인적으로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본성, 그 바닥에 분명 ‘짐승의 본성’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이 짐승과 달리 인간으로서 존엄한 이유는 그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짐승의 본성’을 길들일 수 있는 성찰하는 ‘인식’과 ‘의사’,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있는 ‘행동’까지 ‘학습할 수 있는 본성’까지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리라.


불의 이용과 도구의 사용보다도 언어의 학습이 인류의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게 된 것도 언어를 통하여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오류를 수정하면서 개인적 욕망을 제어하는 ‘감성의 양육’과정을 오랜 시간을 통하여 전수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인류가 문화적 존재로서 세상을 이른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물론 동일한 사실과 현상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른 구체적인 반응으로서의 인식과 의사, 그리고 행동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나영이사건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만한 형벌이면 족하다는 의견과 더욱 엄한 형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견해의 대립이 있는 것도 그 한 예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형사적 처벌은 사후적 구제책에 불과한 것이다. 즉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에 일종의 응보적, 또는 교화적 필요에 의해서 비로소 선언되는 미봉책에 다름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이 다시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도대체 무엇으로써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러한 야만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 짐승과는 달리 ‘경쟁적인 생래적 본성’이외에도 ‘연대적인 양육된 본성’까지도 아울러 가진 존재라 한다면 ‘양육된 본성’이 ‘생래적 본성’인 ‘욕망의 질주’를 제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회적 기준들을 꾸준히 합의하면서 교육하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경쟁도 중요하지만 타인을 존중하는 ‘공존과 상생을 위한 경쟁’으로 학습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위대성’은 비록 개인적, 개별적 가치에는 배치되더라도 ‘보편적 가치에 대한 존중과 배려심’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한 보편적 가치가 다수의 대중들에게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서는 ‘가치’라는 것들이 무엇보다 ‘소통에 따른 참여의 결과물’들이어야 할 것이다.


‘강요된 약속’이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의 약속’만이 존경받는 권위로서의 효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속에 내재된 두 가지의 본성 중에서 어느 것으로써 각자의 인격을 규정할 것인가의 개인적인 선택도 사회적 가치의 흐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으므로 개인의 범죄는 일차적으로는 범죄행위를 선택한 범죄자 개인의 책임이겠지만, 어느 정도는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먹고 살기위해 넋을 놓고 달리는 사이, 이전의 혜진, 예슬을 포함하여 나영이에 이르기까지 무고한 아이들의 희생들이 잇따르고 있다. 안타까운 아이들의 피해의 그늘에 또 다른 유린되고 납치된 소중한 생명과 가치들이 가려져 있지는 않은지. 먹고 사는 문제에 지나치게 치우친 나머지 삶의 본질들로부터 너무 멀어진 것은 아닌지, 치유가 불가능한 범죄자를 양산하는 사회의 치유는 어떻게 얼마나 가능할 것인지 고민할 때다.


종교라는 이름의 성스러운 장소조차 더 이상 범죄의 현장이 되고 마는 현실, 존경받고 존경할 수 있는 개인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오늘의 사회, 또 다른 허위의식들 속에서 잠시 방심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소리없이 잊혀지고 있는, 힘없이 폭력에 묻혀가면서도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생명과 가치들은 없는지 되돌아 볼 때다.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과 사회와 국가는 결코 모두 범죄와 범죄자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므로 비록 치유가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치유하기를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반인륜적, 반사회적, 반국가적 범죄를 통제하기 위해 개인과 사회와 국가는 또 얼마나 엄격하고 공정하게 스스로를 재단해왔는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범죄자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형벌이 내려져야 할 것이지만, 최소한 끊임없이 반복되는 반인륜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근원적인 해결책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형벌로서의 사형과 무기징역이 개인적 응보의 감정에는 충실할지 모르겠지만 사회적 방위의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보다 더 근본적이고 조화로운 해결책은 무엇보다 구성원 각자의 내면에 숨어 있는 조급하고 이기적인 ‘경쟁적 본성’들을, 보다 더 조화롭게 타인의 생명과 권리 그리고 합의된 보편적 가치들을 존중하는 ‘연대적 본성’으로의 합리적인 ‘감성의 양육’을 강조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비록 느리더라도 꾸준한 공감을 유도하는 노력으로 믿음의 뿌리를 내릴 때 사회는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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