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2일 수요일

[메모] 견제와 균형

 

[메모] 견제와 균형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을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선상에서 보면 권력도 본질적으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늘 남용의 우려가 있는 것이다.


정치가 종교가 아니고, 정치인이 성직자가 아닌 것은 분명할 것이므로 정치로부터 궁극적인 가치의 실현을 기대하는 것은 한바탕 부질없는 꿈일런지도 모르겠다.


어느 학자의 말처럼 누가 집권을 하든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듯이 상대적 권력은 상대적으로 부패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헌법도 그와 같은 불신에 기초하여 국가의 권력을 한 곳으로 집중하지 않고,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로 분산시켜 상호 감시와 견제를 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리라.


최근의 정치권 일각에서의 개헌 논의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실질적인 권력분립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비판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제도에 있다기보다는 제도의 중심에 있는 인간의 철학에 있다.


아무리 제도를 바꾼다고 한들,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서는 형식적인 틀만 바꾼다고 해서 큰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인간의 중심에 자리한 가슴에 어떤 가치관으로 채울 것인가가 바로 핵심이다.


바다로 흐르는 강물이 곧은 길로 바로 직행하지 않고, 굽이 굽이 굽이쳐 흐르는 것도 때로는 좌로, 또 때로는 우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충격을 줄여가며 속도를 조절하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서로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속 편하고 한가한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느림의 철학까지는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결코 빠른 길 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바다로 흐르는 강물이 바다로 가야하는 소명을 잊고 흐름을 멈추어 버린다면 그 강은 그 자리에서 바로 썩어 들어가 생명력을 잃고 만다. 때로는 넘치지 않도록, 또 때로는 말라버리지 않도록 계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둑을 쌓고, 댐을 건설할 것인가. 자연적인 생태계의 힘을 거스르지 않도록 최소한의 넛지에 만족할 것인가. 어느 정도의 개입이 본질의 균형을 흐리지 않는 방법일 것인가.


바다로 가는 길은 오직 한 길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길이어야 한다. 그 다양한 길들이 자연스럽게 만나서 바다를 이루는 것이지, 어느날 아침에 큰 호수를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바다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바다일 수는 없다.


이미 바다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늘 새로운 길을 만든다. 그것이 균형으로 가는 견제인 동시에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개인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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