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0일 목요일

[생각] 자유와 제도

 

[생각] 자유와 제도



자유는 제도인가? 자유는 제도가 아닌 것인가? 자유는 제도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자유는 제도와 동행가능한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딱히 그렇다, 아니다라고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고, 역사적으로도 시대상황에 따라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는 것 같다.


헌법상으로 자유란 다소 견해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천부인권으로서 그 본질적 내용을 제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권리이므로 군주나 국가가 은혜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당연히 가지게 되는 자연적인 권리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자유는 제도 권력인 국가에 대항하면서 개인의 운신의 폭을 넓혀온 투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국가의 역할도 전체주의, 군국주의, 권위주의시대에는 개인의 적으로서 침탈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민주주의가 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그나마 보호자, 후원자,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고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끊임없는 상호간의 피드백을 통한 소통이 있어야 한다. 자유는 일정부분 제도이더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제도가 아닌 자유의 영역도 끊임없이 개척되고 발견되어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제도와 제도가 아닌 것들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며, 제도로서의 자유는 과거의 정태적인 현상을, 제도가 아닌 자유의 영역은 치열한 현재의 동태적 사실을 규정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바탕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 민주주의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그러므로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제도인 자유에 집착하게 될 것이고,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제도가 아닌 자유의 영역의 개척에 보다 더 주력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동시대인의 의견들을 수렴하여 또 하나의 제도를 만들고, 수정하면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을 이어나가는 것이 민주적 삶 아니겠는가.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자면, 제도로서의 자유는 기존의 정해진 물길이며, 제도가 아닌 영역의 자유는 물의 양에 따라 범람을 거듭하며 새롭게 내는 물길이다. 새로운 물길이 일정한 주기로 일상적이 되면 그 또한 제도가 되는 것이고, 바다로 가는 물길은 정해진 하나의 길 외에도 여러 갈래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물길을 콘크리트 장벽으로 둘러치고 나면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단절이다. 자연적인 정화과정의 차단으로 지속적으로 인위적인 통제를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더 큰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고, 사후에 잘못을 발견하여 교정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원상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도자의 역량이란 큰 줄기를 제대로 세우는 그런 뿌리이면 족하다. 스스로 꽃이 될 것이 아니라 꽃을 피우는 일에 주력해야 하는 것이다. 줄기가 높을수록 뿌리는 더 깊이 암흑 속으로 박혀야 한다. 그것이 보다 많은 자유의 열매를 맺는 일이고, 바다로 가는 진정한 동행인 제도로서의 자유의 진정한 속성일 것이다.


제도는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발걸음 아래서 흔적을 남기듯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본질이 한걸음 나아가면 그림자도 한걸음 나아가는 것과 같은 그런 동행인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어떠한 이유로도 자유의 길을 막아서는 안된다.


제도는 정오의 햇살을 마주한 자유의 그늘이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더라도 전부를 침해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어둠이 깔리면 운신의 폭도 줄어드는 한계를 가진 것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침해할 수 없는 본질은 새벽이 오면 다시 태양이 뜨는 것과 같은 자연과 같은 자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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