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9일 수요일

[생각] 문화와 문명

 

[생각] 문화와 문명



개인과 사회와 국가에 있어 문화란 과연 무엇이며, 문명이란 또한 무엇인가?  정치문화란 무엇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며, 정치문화의 수준이란 또 어느 정도의 질적 평가를 전제하는 것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문명이란 ‘물질적으로는 생활이 편리해지고 정신적으로도 발달하여 세상이 진보한 상태’를 의미하고, 문화는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理想)을 실현하려는 활동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한 물질적·정신적 소득의 총칭’을 말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견해에 따라서는 문화의 의미를 문명을 포괄하는 보다 광범위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문화와 문명을 구별없이 같은 뜻으로 함께 혼용하고 있기도 한 것 같다. 위키백과사전에 의하면 에드워드 버네트 타일러는 1871년 그의 사회인류학 저서에서 “문화 또는 문명이란 제 민족의 양식을 고려할 때 한 사회의 구성원이 갖는 법, 도덕, 신념, 예술, 기타 여러 행동 양식을 총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서는 주로 자연과 대립하는 개념으로서, 인간을 제외한 자연은 객관적·필연적으로 생기지만 이러한 자연을 소재로 하여 목적 의식을 지닌 인간의 활동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문화’라고 정의한다. 유네스코는 2002년 “문화는 한 사회 또는 사회적 집단에서 나타나는 예술, 문학, 생활양식, 더부살이, 가치관, 전통, 신념 등의 독특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특징”으로 정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든 문명이든 간에 각 개인의 생활영역에서 관계로 맺어지는 일정한 공간적, 집단적 특성을 공통분모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견해로 볼 때 문화와 문명을 구분짓는 것은 바로 시간적 특성과 연속성여부로 그 차별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즉, 인류문명의 발생지로 크게 4대문명을 들고 있는데, 이것을 문명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과거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형태로 정의할 수 있는 공통된 생활양식이었던 것이고, 문화란 지금까지도 그러한 생활양식상의 특성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살아있는 현재의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다시말하면 문명이란 고정된 과거의 정태적인 현상인 것이고, 문화는 현재도 진행중인 동태적 특성을 강조하는 개념인 것이다.


정치문화란 그 중에서도 정치적인 생활양식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리라. 우리의 정치문화는 역사적으로 볼 때 크게 원시시대의 족정(族政), 고대 왕정(王政), 군국주의하의 제정(帝政), 현재의 공화정(共和政)으로 대강의 분류를 한다면, 다른 생활영역에서의 역사적 문명이란 것은 존재했을지라도 최소한 정치적인 생활영역에서는 과거의 ‘문명’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군주의 폭정에 항거하거나, 외세에 항거한 역사들이 비록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시대정신으로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면서 오늘의 헌법상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공화국으로서 계승하여 빛과 어둠을 교차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점차 폭넓게 실현해가고 있는 현재까지 한(恨)처럼 끈질기게 살아있는 연속적인 정치‘문화’는 있다.


비록 외세에 의해 주어진 미약하고 혼란스러운 갈등과 함께 출발한 민주주의였지만, 절망의 독재를 넘어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로, 권위주의를 넘어 참여정부로 정치적인 진보를 거듭하며, 배부르지는 않았지만 희망을 현실로 한걸음씩 이어갈 수 있었다. 이젠 지나간 시간이지만 누구든지 차별없이 거리낌없이 토로 할 수 있었던 늘 열려있던 광장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때로는 친구로서, 또 때로는 원망의 대상으로서 민주주의의 자유로움으로 희망을 밝혀 준, 노무현과 김대중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이 잇따라 서거하고, 거리의 광장은 하나 둘씩 소통없는 벽으로 막혀간다. 촛불을 켜기도 전에,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사람들의 눈빛과 가슴은 굳디자인의 방패에 쫒겨난다. 죽어도 살아있던 ‘오늘의 문화’들이 ‘어제의 문명’이 되고 있다.


문화는 ‘끊기지 않고 흐르는 강’이다. 문명은 ‘길을 잃은 막힌 호수’다. 바다가 먼 계곡의 상류든, 바다에 가까운 강의 하류든 길을 막는 것은 단절인 것이며, 흐름의 중단은 곧 역사의 퇴보다. 정치문화의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큰 기준은 바로 소통의 폭과 연속성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가능한 모든 길은 열려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다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비록 전직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관례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장으로 치뤄졌지만, 그 때 닫혔던 광장은 열리는 듯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는 비록 6일로 단축되긴 했어도 국장으로 예를 갖춘다고 하니 뒤늦게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때맞춰 북한의 조문단도 방문하여 죽어서까지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은 그 분의 뜻을 기린다고 하니 이를 기회로 끊어진 물길들이 다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그래서 과거 10여년 동안, 아니 두 분 전직 대통령들의 평생동안 어렵사리 씨를 뿌리고 꽃 피워온 민주주의의 정치문화가 문명도 아닌 채 초라하게 과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지속가능한 문화로서 더욱 화려한 부활을 기할 수 있도록 그 분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평화적인 조국의 통일도  앞당겨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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