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2일 토요일

[생각] 듣고 말하기와 읽고 쓰기

 

[생각] 듣고 말하기와 읽고 쓰기



최근의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한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기회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발전으로 카페나 블로그, 채팅이나 마이크로블로깅 등을 통하여 더더욱 실시간 네트워킹을 통한 소통의 기회가 증가함으로써 ‘1인미디어시대의 시민저널리즘’까지 화두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미 대세를 거스르기는 힘든 일로 보이지만, 이러한 문화를 확산시키려는 정부의 의지와 관련 기업의 이해관계 등을 이유로 문화의 확산속도는 일정 부분 조정을 받게 된다. 일례로 통신기업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이미 세계적인 열풍의 주역인 아이폰의 국내도입문제가 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지켜보고 있는 관련업계의 종사자들은 더할 나위없는 조급함과 답답함으로 참고 있기 힘든 모양이다. 그 분야에서 세상의 진보를 빨리 내다보고 예측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어쩌면 정보문명사회에서 ‘고립된 섬’으로 남겨져 많은 기회들을 놓치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진심어린 염려들로 느껴진다.


그들이 걱정하는 동태적 문화와 정태적 문명의 고립도 문제가 되겠지만 더더욱 큰 문제는 ‘개인의 고립’이다. 더욱이 최근의 열풍의 주역인 트위터를 비롯한 마이크로블로깅을 통한 소셜네트워킹이란 것이 새로운 소통의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는 즈음에 우리는 또 하나의 시민들의 자연적 권리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


‘소통’이란 막힘이 없이 흐르는 것이며, ‘의사의 소통’이란 내심적 의사의 왜곡, 굴절없는 표현이라고 대강의 정의를 한다면(이 세상에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개인적 입장에서 보면 정의는 곧 오류이기는 하지만) 표현의 자유, 자유로운 접근이용의 자유(Access권) 등의 자연적 자유를 개별기업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그들의 경제적 자유에 의해 묵살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행위는 모두 차별없이 인간의 소통을 향한 자유로운 표현의 수단인 것이며 듣고 말하는 것이 본능에 기초한 행위이고, 읽고 말하는 것은 사후적 교육의 결과든, 듣고 읽는 것이 소극적, 수동적 행태이고, 말하고 쓰는 것은 능동적, 적극적 행태라는 구별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의 총합은 주체적인 개인의 자발적인 의지의 표현이라는 사실에는 다름이 없으므로 본질적 내용들은 제한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행위는 또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창조적 지성을 만들어가는 유용한 도구들이다. 가려서 들으면서 그 숨은 의미를 파악하고, 이미 내 뱉은 말도 토론하여 주체적으로 수정하고, 타인의 간접적인 경험들을 통해 행간의 의미들을 읽어내고, 자신의 의지를 기록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침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권리임에 틀림없다.


좋은 해몽이 좋은 꿈을 만들고, 좋은 해석이 좋은 법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제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동시대인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체적인 자각과 실천하는 역량에 달려있는 문제일 것이다. 인간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한 합리적인 해석의 과정을 거쳐 창조적으로 낡은 제도를 개선하고, 폐기함으로써 새로운 자유를 발견하고 개선된 제도를 구성함으로써 성숙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또한 동시대인의 공감대적 가치를 발견해 나가는 필수적인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귀와 입을 막고, 눈과 손을 가두기에는 듣고, 말하고, 읽고, 쓰려는 강물의 기세는 방향을 틀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고 세계적이다. 세상이 하나로 모이는 바다로 너무 늦지 않게 합류하는 가장 쉬운 길은 큰 줄기를 따르는 것이리라. 국가작용의 편이성이나 기업의 경제적 자유보다는 시민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우선하는 것이 오늘날의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도 합리적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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