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7일 월요일

[생각] 오바마의 버려진 개를 말하다. 8 - 욕망의 사회

 

[생각] 오바마의 버려진 개를 말하다. 8 - 욕망의 사회



오바마가 백악관에 입성한 지도 벌써 9개월째에 이르고 있다. 연일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관심을 보였던 ‘퍼스트 도그(First Dog)’의 주인공은 ‘포르투칼 워터 도그’ 종의 강아지로 결정되었으며, 최근의 전해지는 근황을 보니 그 새 많이도 컨 것 같다.


최근 미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오바마의 공약 중 하나인 ‘의료개혁’의 문제인 듯 하다. 그러나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보수진영들은 그들의 언론과 보험, 제약사를 중심으로 한 관련업계를 앞세워 연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듯 하다.


저명한 경제학자 폴그루그만은 이를 개인들 속에 잠재된 욕망의 분출로서 미국 사회의 광기로 묘사할 정도이니, 여기서 우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경제적 선진국 중의 하나라는 인간 사회를 통해서 이기적 탐욕을 향한 무한 질주의 위력을 보는 듯 하여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며 출발한 오바마는 백악관 참모진들의 구성부터도 기득권층인 보수진영을 배려한 인사정책을 구사했고, 모든 행보에서 우리의 전 대통령 노무현처럼 ‘공생을 위한 조화’에로의 고민의 흔적들을 많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으로부터 사회주의자로 매도 당하고 있는 상황까지 닮아 있다.


그의 고민의 깊이와는 반대로 지지율은 연일 하락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조직적인 반발까지 가세하여 오바마의 앞으로의 행보에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일단은 기한을 다소 연장하여 타운홀미팅을 통한 여론수렴과 설득을 하고는 있지만, 민주당 내부의 보수진영까지 노골적인 반발을 하는 터라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미국의 의료시장은 우리와 달리 강제보험으로서 공보험인 전국민의료보험체계가 갖추어져 있질 않고,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어’와 빈곤층에게 제공되는 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이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사보험 영역에 맡겨져 있는 것 같다.


전국민의료보험을 내세우던 오바마도 최근 하원에서 잠정 합의된 ‘의료 개혁안’에서는 최초 안보다 많이 후퇴하여 의료보험 제공의무를 면제받는 중소기업을 늘였고, 연방 정부가 저소득층에 제공하는 의료보험 가입 보조금은 줄였다고 한다.


심지어 오바마는 ‘공공보험을 도입할지 말지가 의료 개혁의 전부가 아니고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며 공공보험 도입자체를 포기할 수 있음도 내비치고 있다고 하니, 최근 아프칸 파병과 관련한 대외적인 정책들과 맞물려 오바마의 고민과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느끼게 한다.


우리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노무현의 ‘지나친 고민’이 결국은 정치적인 영역에서 양쪽으로부터 비난받는 결과를 초래하고, 그를 무마하는 과정에서 확실한 진영가치의 실현에는 성공하지 못한 점을 반추해보면, 지금 오바마가 처해있는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노무현은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의 양쪽진영의 측면에서는 실패로 규정할지는 몰라도 확실한 ‘노무현의 가치’는 실현한 듯이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노무현의 가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만들기’였으며, 그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일단의 성공을 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백악관의 ‘퍼스트 도그(First Dog)’ 선정과정에서도 최종적으로  ‘포르투칼 워터 도그’와 ‘라브라두들’이 선정되었을 때 ‘포르투칼 워터 도그’가 백악관의 낙점을 받은 이유가 ‘라브라두들’은 라브라돌 리트리버와 푸들의 교배견이라는 점에서 제외되었다는 후문까지 있는 걸 보면 피할 수 없는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들도 엿보인다.


스스로를 잡종견에 비유하며, 미국 사회의 재건을 내세운 오바마가 뿌리 깊은 내부와 외부의 적에 담대하게 대응하여 미국 사회의 희망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인지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이다. 또한 우리의 의료민영화의 도입문제와 관련하여서도 방향의 설정에 많은 시사점이 될 것 같다.


오늘의 현대 사회는 ‘욕망의 사회’다. 인류의 종말이 있다면 그 시기는 자연재앙으로 인한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이 탐욕의 꼭지점에 이르는 순간이 될 것이다. 탐욕을 다스리지 않으면 상생은 불가능하며, 탐욕을 다스리는 제도만이 존경받는 권위로서 기록될 것이다.


노무현을 잃고난 후에야 노무현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확인하고 있는 지금, 오바마를 잃고 오바마의 가치를 알게 되는 너무 늦은 시기 이전에 탐욕의 광기를 끊고, 절제된 욕망의 선순환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만들기’의 가치가 실현되길 바란다.


어제의 노무현처럼 계급장 떼고 국민의 신임을 다시 물을 용기와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가치를 위해 싸울 진정성이 오바마에게도 있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브레이크없는 욕망의 질주 속에서 ‘오바마의 가치’가 적절한 제동장치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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