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2일 토요일

[생각] 인식과 의사, 선의와 악의


 

[생각] 인식과 의사, 선의와 악의



6일 새벽 예고없는 갑작스런 북한의 댐 방류로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수위가 높아져 야영객 등 6명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되는 사고가 있었다. 북한은 7일 판문점 남북 적십자 채널을 통해 황강댐 방류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우리측 전화통지문에 대해 이례적으로 발빠르게 답변을 보내왔지만, 인명피해와 관련해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비록 북한은 통지문에서 "댐 수위가 높아져 물을 방류했다"면서 "앞으로 많은 물을 방류할 때는 사전 통보하겠다"고 밝혔으나, 당시 북한쪽 강원도와 황해남도 지역에 수해가 우려될 기상조건이 아니었다는 점, 또 새벽시간에 많은 물을 한꺼번에 쏟아낸 점에 대한 해명이 충분치 않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통일부 장관은 9일 북한의 예고 없는 대량 방류로 우리 국민 6명이 사망·실종한 ‘임진강 참사’에 대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북측이 의도를 갖고 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으며, ‘북한이 이번에 무단 방류를 했다고 스스로 밝혔고, 이는 사고나 실수에 의한 방류가 아니라 북한의 의도적 방류를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는 나아가 국제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있으며, 전문가의 견해는 명백히 국제 관습법상 모든 국가는 국제하천을 이용함에 있어 다른 국가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의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선언적 의미 이상의 실효적인 대책은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지난 10일 북측이 ‘임진강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우리 정부에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의 임금 인상 문제와 관련, 예년 수준인 5% 인상안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되어 사실상 지난 6월 남북 간 2차 실무회담에서 제시한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임금 300달러 인상안을 별다른 논의 없이 스스로 철회한 것으로 보여 북한 내부의 미묘한 갈등상황도 엿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임진강 참사’ 희생자에 대한 보상협상은 한차례 결렬되는 등 난항 끝에 11일 유족과 수자원공사, 연천군이 희생자 1명당 5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으며, 경보관리시스템 오작동으로 피해를 막지 못한 것으로 드러난 수자원공사 임직원 5명에 대해서는 직위해제 조치가 내려졌다.


분명 이번 사건에서 북한은 ‘물을 방류’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 방류로 인하여 우리 측의 인명피해에 대해서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별도로 따져볼 수 있겠으나, 방류의 규모로 볼 때 ‘미필적 고의’, 즉 인명피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별로 개의치 않은 흔적들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벌써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는 ‘용산 참사’와 비교해 보면 많은 유사점이 있다. 상황을 놓고 볼 때 인명피해의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지 않았느냐의 문제와 회피가능한 다른 방법이 있었음에도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으로부터 과연 모두가 자유로운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의문이 많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과정에서 검찰은 참사 관련 수사기록 중 경찰관들의 직무집행에 위법이 있었는지에 대한 수사기록 3000여쪽을 열람·복사할 수 있게 해주라는 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검찰의 비공개입장은 확고한 듯 하며,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은 보상은 커녕 한마디의 사과도 얻지 못하고 주검을 안고 여전히 거리에 있다.


두 사건을 놓고 볼 때 ‘임진강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은 분명해 보이며, ‘용산 사건’에서도 이유야 어떻든 억울한 생명들의 희생이 있었고, 정치적인 견해와 상관없이 ‘생명의 기준’으로 볼 때도 의심의 여지없이 보편 타당한 기준으로 차별없이 존중받아야 할 존귀한 생명들이며, 동등한 권리를 가진 국민들이었다.


세상에 선의와 악의가 있다면, 종교적 기준 이전에 제도적으로 이미 마련된 법의 기준에 더욱 충실할 필요가 있다. 즉 악의는 ‘알고 행하는 것’이며, 선의는 ‘모르고 저지르는 일’이다. 행여 누군가 타인에게 허용할 수 없는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도모한다면 그는 분명히 ‘세상의 악의’다.


법의 정신은 그런 보편 타당한 정의의 기준에 최대한으로 충실해야 한다. 법의 저울은 여전히 건재한데,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잣대들이 균형감각을 잃어 버리면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신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문제인 이유다. 진보하는 역사는 소급하여서도 그 책임을 묻는 것이 헌법정신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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