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5일 토요일

[생각] 소외와 소통, 그리고 개헌

 

[생각] 소외와 소통, 그리고 개헌



일반적으로 소외의 현대적 정의에 대하여는 무력감, 무의미성, 무규범성, 자기소외 등 여러가지 의미로 논의되고 있고, 전통적으로는 자본주의하의 노동의 소외를 주장한 마르크스의 소외 개념 등이 있다고 한다.


마르크스의 전통적 개념은 개인의 심리적 상태와 상관없이 객관적인 상황만으로 소외를 정의하고 있는 듯 하고, 어떤 사람들은 소외를 하나의 규범적 개념으로 파악하여 인간의 본성이나 자연법에 근거하여 기존의 제도를 비판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설명하고 있는 입장들도 있는 모양이다.


또한 소외 중에서도 자기소외를 강조하여 소외란 하나의 사회심리학적인 사실로서 무력감, 무의미성, 무규범성의 체험으로부터 출발하는 개인적 소외감정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는 견해들에 이르기까지 아직까지도 많은 견해들이 있는 것 같다.


결국 논의의 핵심은 소외란 어디로부터 출발하는 것인가의 문제, 즉 제도로부터의 소외인가, 자신으로부터의 소외인가, 그리고 그 극복방법은 무엇인가의 문제가 될 듯 싶다. 개인적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외의 원인은 개인과 제도, 둘 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전통적인 견해들의 배경은 제도의 권위에 개인이 대항하기에 역부족이었던 시기에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기 위한 도구로써 소외의 개념이 사용된 듯 하며, 현대에 와서는 어느 정도 민주화의 성과가 시스템의 소통구조로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개인의 소외감정, 즉 자기 소외가 부각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도 소외의 문제는 비단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인식과 제도 모두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제도가 소외의 원인인 때에는 외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개인의 인식과 태도가 소외의 원인인 때에는 자유의지로 극복해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소외는 기계파괴운동으로부터 출발하여 구조적인 소외로 확장되었으며, 자유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강화의 빌미가 되었다. 그 이후 정치 경제적인 영역에 있어서 권위있는 제도로서의 국가가 개입하여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요구받게 된 계기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현행 헌법상의 경제질서도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 이해하는 것이 다수 학자의 견해이다. 즉 시장의 자유경쟁에 완전히 떠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규제와 조정, 개입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세계화와 국제화, 글로벌스탠더드를 강조함으로써 그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제도로부터, 개인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또한 정보화사회의 급격한 진행으로 시간의 흐름 자체가 소외의 진행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이해관계의 대립은 첨예화 되고, 화합과 통합은 점점 더 어려운 고난의 작업이 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요구되는 최선의 가치는 ‘다양성의 존중’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소통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소외의 극복이 소통의 목적이고, 소통의 시스템화가 정치의 목적이라고 이해할 때 최근의 개헌논의와 관련하여 우리의 통치구조는 대통령제보다는 의원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선거제도는 다양성의 존중차원에서 중대선거구제, 비례대표와 직능대표로 구성되는 상원과 지역대표로 구성되는 하원의 양원제가 보다 합리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변화 속도에 비추어 볼 때 의원을 비롯한 선거직의 임기를 장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직의 확대와 선거직에 대한 국민소환제도의 도입, 그리고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제안권의 도입 등도 소외의 극복을 통한 소통의 시스템화를 위해서 필요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지도자의 철학이다. 제도가 어떻든 그 제도를 운영하는 최고지도자의 선택과 행동이 보다 직접적으로 갈등을 키우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갈등의 원인이 소외이고, 소외의 극복이 소통으로써 갈등을 해소하는 길이라는 것에 진정성으로써 동의한다면 굳이 개헌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제도적 준비는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오직 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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