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3일 수요일

[생각]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생각]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구시대의 모순에 항거하여 목숨을 건 프랑스혁명의 결과로 쟁취한 이래로 시민의 권리로 인정되어 권리장전으로서 오늘날 우리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자유와 평등의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논란은 있지만 1875년 공화국 헌법(제3공화국 헌법)이 채택되면서, 추가적인 공식이념으로서 채택된 박애의 정신이란 또한 과연 무엇일까.


자유란 원하지 않는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개별적 자유의지의 실현 등의 의미로, 평등이란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적 대우의 배제 등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는 일반적인 행동의 자유를 그 주요 내용으로 할 것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의 권리의 침해금지, 도덕규범의 준수 등을 그 내용으로 하면서 스스로의 내재적 한계를 갖는 개념이다.


평등이란 자유를 바탕으로 한 인간 본성의 질서가 예견하지 못한 또 다른 힘에 의하여 어느 한 쪽으로의 쏠림을 방지하여 균형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보다 많은 다수 인간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도구적 권리이다. 물론 평등권도 자유권과 마찬가지로 천부인권으로서 자연적인 기본적 인권이지만, 자유의 침해를 한계짓는 방어막으로서의 역할도 함께한다고 본다.


따라서 어찌보면 자유가 갖는 내재적인 한계는 평등의 실현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존재하게 된다. 즉 개인의 무한의 자유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는 타인의 권리나 도덕규범 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라면, 이때 타인의 권리와 규범의 내용을 고려하는 기준으로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평등의 이념일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로 아직도 유효한 인간의식의 활동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의 내용도 ‘자유’를 우선할 것인가, ‘평등’을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법은 모두 동일하게 민주주의를 채택하면서도 자유를 강조하면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평등’을 강조하면 ‘사회민주주의’체제를 말하게 되는 것이리라.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헌법의 정신은 바로 ‘자유’를 우선하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기본으로 하지만, 이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평등’을 고려한 제도적 장치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의 규제와 조정을 허용하고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일 것이며, 그 외에 이른바 ‘사회적 기본권’의 이름으로 보장되는 ‘사회적 자유권’들이다.


이런 이해들을 바탕으로 보면 우리의 정치질서를 ‘사회적 자유주의’로 규정하는 견해가 타당한 듯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과 일의 선후, 방법의 선택 등을 두고는 여전히 많은 견해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결국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이며, ‘가치의 문제’인 동시에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작금의 현실을 토대로 지금 20대80의 사회를 평등하다고 볼 것인가, 50대50의 사회를 평등하다고 볼 것인가. 80대20의 사회를 평등하다고 볼 것인가의 가치와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보수적 세력’들은 지금 현재의 20대80의 구도를 유지하려 하고, ‘진보적 세력’들은 지금의 구도를 깨고 뭔가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정치적 동물이므로 모든 활동은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성은 ‘생존의 추구’이므로 바로 ‘생명현상으로서의 욕망’이다. 양육의 결과로서 ‘다듬어진 욕망’이 또 다른 인간 본성인가의 문제는 두고 보더라도 ‘생존의 본성’은 ‘양육의 본성’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조차도 늘 감시하지 않으면 후퇴하고 마는 것이다.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의 가치는 유기적 생물체의 진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분화하므로 진보의 분열은 본질적인 생명현상이다. 그러므로 진보적 세력들이 분열하는 것을 나무라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진보더러 진보적 가치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따라서 진보의 연대는 일시적으로 사안별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영속적인 연대는 본질적인 속성과 배치되므로 힘든 일이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의 프랑스혁명의 사상 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애사상이다. 1789년 8월 26일에 발표한 인권선언에도 박애는 거론되지 않았고, 혁명과 관련하여 유일하게 ‘박애’를 강조한 기록은 1793년 파리시 집정관회의이며, 1875년 공화국 헌법(제3공화국 헌법)이 채택되면서 공화국의 공식 이념으로서 등장하였다고 하지만, 박애로써 자유와 평등은 비로소 규정된다.


자유의 가치도, 평등의 가치도 박애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인간본성인 ‘생명현상으로서의 욕망’과 비록 양육의 결과이긴 하지만 ‘다듬어진 욕망’의 갈등구조가 탐욕의 유혹을 뿌리치지 않고 선순환을 하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끊임없이 ‘박애’를 양육해야 하는 이유이다. 일본의 새로운 총리 하토야마의 ‘우애’도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며, 늘 가슴에 품고는 있지만 익숙하게 내뱉지 못하는 말 ‘사랑’이 또한 그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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