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2일 일요일

[생각] 가장 한국적인 것의 위대함

[생각] 가장 한국적인 것의 위대함



요즘 언론을 오르내리는 화두 중의 하나로 한국 음식의 세계화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는 비단 음식문화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의 모든 방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노력해야 할 일이지만, 여전히 한국적인 것의 위대함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통적으로 가야할 길이 아득한 듯하다.


현대 사회의 모든 생활영역은 예전보다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어느 한 분야의 낙후성이 다른 분야의 성과까지 평가절하시키는 상호 의존도가 훨씬 커졌다고 생각된다. 세상 사람들이 한국을 인식하는 정도도 보다 광범위해졌고, 또 평가수준도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참여정부시절까지는 최소한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점진적인 상승곡선을 이어왔다고 본다.


그런데 참여정부이후 MB정부에서는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의 ‘정권은 짧고, 인권은 길다’라는 임기전 퇴임발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여러 상황은 이미 경고등이 켜진지 오래다. 인권은 인간생활의 본질적인 영역에 관한 문제이므로 역사적인 평가에서도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될 것이다.


과연 정치적인 영역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이는 역사적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의 이름으로 지나치게 한국적 특수성만을 강조하여 독재권력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온 점이 없지 않지만, 엄격한 보편성의 기준에 바탕을 두되 민족적 정서나 해방이후의 특수한 역사적 과정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 예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불교적 정신세계와 유교적 생활양식의 뿌리, 제국주의 식민지지배와 외세에 의한 해방, 그리고 성장중심의 지나친 불균형전략의 선택 등이 우리의 한국적 특수성의 개략적인 조건들이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본질은 역시 ‘먹고 사는 문제’다.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는 옛말이 있지만 그러한 특수성들을 고려하더라도, 오늘은 장맛을 기본으로 하고 ‘뚝배기도 장맛을 살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국제인권단체들의 인권훼손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 나올수록, 지금의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 글로벌화된 시장에서도 국가브랜드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이 된다고 생각된다.


‘광장은 있어도 토론할 수 없는 나라’에서 아무리 좋은 휴대폰을 만들어 본들 소통할 수 없다면 스스로의 한계를 갖는 일이 아닌가. 비록 경제적인 지표들은 긍정적 신호들의 강세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은행총재의 우려대로 부동산시장을 중심으로 한 지나친 물가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위험 등의 불안요소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시점에 정치적인 영역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의 위대함’을 살리는 길은 바로 좌우와 중도강화 등의 전술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숙성된 장맛’처럼 녹여내는 펄펄끓는 ‘뚝배기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시 계급장 떼고 맞붙을 정도의 의지와 진정성에는 미치지 않더라도 인내하고 참아왔던 소외된 선의들의 양념을 ‘포용과 배려’의 손길로 확실한 버무림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자에 대한 감세와 서민에 대한 세부담의 증가, 특히 술, 담배에 대한 증세에 덧붙여 ‘죄악세’의 논란까지 가세하는 현실을 보면서 녹색성장이란 과연 ‘누구의 무엇을 위한 녹색인지’, ‘그것이 진정 녹색일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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