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1일 화요일

[내일] 사랑의 메신저?

 

[내일] 사랑의 메신저?



불특정 다수인을 향한 무차별 살상행위는 분명 개인의 파탄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극도로 긴장시키는 불안요소임에는 분명하다. 20일 강남구 논현동 고시원에서 발생한 묻지마식 방화 살인 사건은 최근의 우울한 경제 상황 속에서 더욱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범행동기에 대해 범인은 "세상이 나를 무시해 살기 싫었고 고시원비와 휴대전화 요금 등을 내지 못하는 처지가 한탄스러워 범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의 극단적 행동의 선택에 대해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젊은 세대들의 총체적 위기감이 들리는 듯하여 마음이 무겁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개인과 사회의 성숙도가 차이가 난다고 한다. 물론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도, 유럽에서도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어디든 가능한 일들이지만 문제는 사회의 안전망과 연대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짜여져 있느냐에 따라 예방과 재범의 방지에 현격한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두가지 제도를 잘 갖춘다고 한들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있지 않다면 무익한 일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그 바탕이 되는 교육의 철학일 것이다. 특히나 경쟁을 유발하는 일제고사식 교육이 아니라 사회와 나 이외의 다른 구성원을 존중하는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랑의 교육, 연대의 교육이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민족만큼 사랑을 표현하는데 서툰(?) 종족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슴 속을 들여다보면 그 사랑의 크기와 깊이는 비할데 없이 웅장하고 위대하다. 문제는 역시 사랑의 주체와 객체간의 소통의 부족이다. 눈높이나 방향이 서로 너무나 다른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가족간의 소통, 나와 내 이웃과의 소통, 사회와 사회간의 소통, 개인과 사회간의 소통, 그것이 인간이 소외로부터 탈출하여 적극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케 하고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존중심을 갖게 하여 묻지마식 일탈로부터 자신과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고시원의 그 방화범의 경우 주변인의 말로는 지극히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은둔형 성격일수록 자신을 표현하기보다는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작은 자극에도 극도로 민감하여, 과도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미래가 없는 어두운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채 현실이라는 압박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숨어있던 왜곡된 본능만이 강화되어 반무의식적으로 폭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가능한한 인간을 시험에 들게해서는 안될 것이며,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이 일깨워야한다. 우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가족을 사랑하며, 더 넓게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양육의 가치와 방법은 더불어 함께하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시켜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방향이어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이 첨예하게 대두될수록 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된다. 그렇더라도  다른 생각과 다른 가치들을 서로 존중하며 너무 늦지 않도록 소통의 방식을 넓혀 서로의 진솔한 마음들을 굴절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의 메신저들이 되기를 기대한다. 개인과 더불어 공동체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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