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9일 금요일

[영남알프스(영축산,신불산,간월산)] 자유(自由)의 평원으로 가다.

 

[영남알프스(영축산,신불산,간월산)] 자유(自由)의 평원으로 가다.



영남알프스로 산행지를 정하고 난 후부터 언젠가 감명깊게 보았던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그 광활했던 알프스산맥이 떠오른다.


그들은 사랑과 자유(自由)를 찾아 알프스를 떠나지만, 나는 자유(自由)를 찾아 서울을 떠난다.

새벽에 출발하는 것과 달리, 늦은 밤에 서울을 떠나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세계다.


휴일의 새벽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새로운 설레임으로 시작되어 발걸음이 여유롭지만,

아직 네온불빛과 간간이 소음이 가시지 않은 밤의 서울은 강박증처럼 발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고속버스터미날에 도착하자 조급함이 조금 가신다.

막상 동서울터미날은 금요일 밤답지 않게 여유롭다.


심야우등고속버스의 좌석은 폭이 넓어서 좋다.

탈출을 꿈꾸는 자들의 대부분은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은데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자위한다.


드디어 탈출은 시작되었다.

시간은 자정을 너머 새벽으로 달리고 있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간혹 마주 오는 차량의 상향 전조등으로 행여 들킬세라

흠칫 잠에서 놀라 깨어나는 것을 빼고는 대체로 원활한 진행이다.


예상과는 달리 별다른 지체도 없고 서두르는 마음 탓인지 버스와 마음이 혼연일체로 내닫는다.

하늘엔 가끔씩 별똥별이 동행을 꾀하여 그나마 외로운 탈출자의 마음을 달래고 있다.


계절 탓일까, 마음 탓일까.

어둠 속에서도 하늘이 꽤나 높게 느껴진다.


예정보다 30분이나 일찍 목적지인 언양에 도착했다.

주위는 여전히 칠흙같은 침묵이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추적자의 입김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은 서울탈출, 성공이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익숙하지 않은 길을 택시기사에게 물어 초입으로 정한 극락암으로 향했다.

이 지역연고인 운전기사도 극락암을 잘 찾아내지 못한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관심이 없으면 여전한 낯설음이리라.

겨우겨우 찾아낸 극락암, 새벽예불은 이미 끝난 듯하고, 몇몇 보살이 아침 공양준비를 하고 있다.


공양간에서 흘깃 이방인의 행적을 살핀다.

그러면서도 공양을 권하지는 않는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 아직 어둠이 걷히질 않아 길도 어둡다.

다른 사람의 불빛에 의존해 한참을 올랐다.


새벽 계곡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몹시 차다.

두꺼운 등산복과 외투를 준비했으니 망정이지 가볍게 왔더라면 고생 많이 할뻔 했다.


얼마를 올랐을까 가다서다를 반복하니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동쪽을 바라보니 하늘이 금새 열릴듯이 꿈틀거리고 있다.


해가 곧 떠오를 모양이다. 걸음을 재촉한다.

운 좋게 기막힌 날씨를 맞아 멋진 타이밍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황홀한 광경을 목격할 찰나다.


아마도 갓 결혼한 신방을 몰래 훔쳐볼 심산과 마찬가지의 설레임으로 문지방에 구멍을 내고 섰다.

아마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드디어 신부의 볼이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옷을 벗기 시작한다. 나의 심장도 더불어 곤두박질 친다.

붉은 혀가 가슴을 파고 든다. 신음이 절로 난다.


바로 이 한 순간을 위하여 그토록 사람들은 결혼을 열망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그것도 비록 눈깜짝할 순간에 스러질 인연이겠지만 말이다.


짧은 시간에 일은 다치렀지만 흥분은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어찌할 것인가. 평생을 신방에만 머물수는 없는 법, 다시 힘겨운 행로를 재촉한다.


바람이 여전히 차다. 잠시 한 눈을 판사이 젖은 속 옷이 몸을 싸늘하게 감싸고 있다.

기침이 난다. 걸음을 재촉하여 열을 발산 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금 속도를 낸다.


드디어 1059봉, 가까이서 영축산(취서산)1092봉이 눈 앞에 있고,

연달아 길게 늘어선 봉우리들이 오래된 그리움처럼 손을 부여잡고 있다.


하늘이 자유를 갈망한 나를 배려한 탓인지, 모처럼의 쾌청한 날씨는 천지를 내 눈안에 담게하고 있다.

멀리 울산 앞바다가 보이고, 겹겹이 쌓인 산들은 한 폭의 그림으로 거대한 예술을 창조하고 있다.


어디에 자연보다 위대한 예술가가 있을 것인가. 신은 이토록 위대한 존재다.

가야할 길이 보일 때는 두려움이 없다.


한층 여유롭다보니, 가는 곳마다 발걸음 옮길 적마다 주위의 장관에 휘감기는 황홀감이 감싼다.

아마도 긴장과 두려움이 사람의 감정을 억압하는 측면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불감증은 병이 아니라 다소 긴장하고 있을 뿐이다. 시간과 익숙함이 해결해주리라.

낯설음과의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 바로 그것이 더욱 본질에 충실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리라.


영축산 1092봉을 지나, 신불산으로 향한다.

발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억새들의 천국이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진 평원, 여기가 진정 나의 조국이란 말인가. 

내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부터 다시 되새김질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신불산 1209봉을 지나 간월산으로 향한다.


너무 이른 새벽에 산행을 시작한 덕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하였으나, 이쯤에서야 군데군데 사람들이 눈에 보이고, 또 간월재에는 차량까지 운행가능할 도로까지 있어, 이전까지의 감동보다는 덜하다.


산행시간이 길어서인지 사람들과 차량들의 소음때문인지 서서히 지치기 시작한다.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은데 눈앞에 흘러 내리는 땀방울이 이제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땅만 보고 걷기를 한참, 드디어 오늘 산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간월산 1083봉에 도착한다.

멀리로는 그 유명한 재약산 사자평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장 달려가고픈 생각이 굴뚝같지만 여러가지 여건상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아쉬움을 접는다.

내가 지나온 신불평원도 지금으로서는 부족함이 없는 만족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 표지석 앞에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고,

한사람의 발걸음에 익숙한 소로에는 두사람이 교차하자 정지해야 할 시간이 길어진다.


이제부터 동행과 인내를 배우는 시간이다.


평소에 부침성이 별로인 나는 애써 먼저 인사를 건네본다. 머뭇거림없이 답례가 따라온다.

이정도만이라도 다시 돌아갈 세상에서는 메아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거짓없는 메아리로 가슴은 햇살처럼 밝아지기 시작한다.

역시 산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선인(善人)이 되는가보다.


간월마을로 내려가는 길조차 가파르다.


오름이 가파르니 내림도 가파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어 내닫는 발걸음이 마음과 보조를 잘 맞추지 못하여 몇번을 미끄러진다.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여서 후미에서 지켜보니 어떤 늘어진 음악에 맞춘 춤사위같다.

잠깐 틈새로 뒤돌아 올려보니, 그제서야 간월산이 간월산(肝月山)인 이유를 알겠다.


달이 걸리면 토끼의 간을 닮은 저 봉우리 끝에서

사람들이 함께 방아를 찧었을 것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간월산에서 발원해서 언양으로 흐르는 작괘천은 메말라 있다.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적나라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고, 미약한 물소리는 강인한 생명을 전한다.


화려한 모텔들의 간판이 보이고 길 위에 차량과 사람들로 붐비는 초입의 거리로 나왔다.

다시 그리울 즈음에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이 앞선다.


서울로 다시 오르는 길, 잠시의 정체는 있었지만 대체로 원활하다.

서울로부터의 잠깐 동안의 탈출은 성공했고, 이제 다시 도망쳐 나온 그 곳으로 당당히 간다.


어제의 역사고, 오늘의 현장이며, 내일의 꿈을 심을

서울은 변함없이 우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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