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7일 화요일

[내일] 이제는 이불을 걷어내야 할 때

 

[내일] 이제는 이불을 걷어내야 할 때



사회가 혼란스럽고 갈등이 극에 달하면 많은 사람들은 종교나 절대적인 힘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종교적인 행위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 생활의 많은 부분을 점하게 되면 오히려 종교로 인해 새로운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은 태생적으로 나약한 존재일 수 밖에 없어 스스로 선택받았음을 강조함으로써 위로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종교적 행위조차도 영구적 평화를 도모하지 못하고 갈등의 새로운 씨앗을 잉태하는데, 하물며 인간의 일상적 조직이란 것들은 얼마나 강건해야 그런 갈등들을 솎아 낼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그런 갈등을 줄이기 위한 끊임없는 몸부림들이 있을 뿐. 그러한 발버둥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의 희망이다.


어디든 사람들이 있으면 일정한 조직이 필요하고, 그 조직에는 각자의 기능들이 있고 또 그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며, 그 각 자리마다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능력의 차이에 따라서 또 구분이 생기게 되고, 계층이 생기며 힘의 차이도 발생하게 되어 필요악처럼 갈등이 양산되는 것이다. 그래서 갈등도 생명현상이라고 하는가 보다.


문제는 그러한 갈등의 깊은 골을 줄이고, 힘의 불균형을 보다 균형적이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러한 악순환구조의 절차적 투명성이 요구된다. 모든 것을 명백하게 공개하고 토론하는 시스템이 사회 전체적으로 제도화된다면(이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상당부분의 갈등은 공동체의 제도 속에서 순화되고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우파와 좌파, 자본가와 노동자, 노인과 청년, 가진 자와 소외된 자, 남자와 여자 등 어떤 유형의 갈등관계이든지 서로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거리낌없이 각자의 치부를 드러내어 소통에 임할 자세만 되어 있어도 공동체의 신선도는 상당히 개선될 수 있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고 상대적 권력은 상대적으로 부패하기 마련이므로 부패도  갈등처럼 일종의 생명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생명현상으로서의 갈등과 부패가 건강한 공동체의 씨앗을 틔우는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남김없이 개방하는 유보하지 않은 진정성이 더불어 요구된다. 공존과 상생이 아닌 일방의 생존만을 위한 가면은 욕심을 낳고, 그 욕심은 치유될 수 없는 갈등을 초래하여 공동체의 운명을 절망의 늪으로 몰아세워 새로운 싹을 틔우기는 커녕 영원히 자멸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노총의 성폭력 파문이라든가, 죽음으로 항변한 언론사관련 연예계비리, 정치권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돈의 고리, 전 청와대 행정관 상대의 성로비의혹 등의 행태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구분없이 부패는 생존처럼 진행되고 있으며, 한가닥 희망도 남기지 않고 소리없이 썩어 들어가는 절망의 끝을 보는 느낌이다.


이제는 이불을 걷어내야 할 때다. 남김없이 벗어야 한다. 그래야 새 옷을 갈아 입을 수 있고, 더 이상 스스로의 생존조차 위협하는 부패도 막아내어 살아 남을 수 있다. 이불 속, 허리띠 아래의 어둠의 역사는 더 이상 용서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간절한 참회의 마음이라면 고통받았던 사람들에 대한 그동안의 빚도 어느정도 탕감받아 회생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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