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작위 위헌확인(각하)[2003.05.15,2000헌마192,508(병합)]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權 誠 재판관)는 2003. 5. 15. 재판관 8:1의 의견으로, 국회가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및 피해보상을 하지 않고 있는 입법부작위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부적법하다며 각하하였다.
1. 사건의 개요
(1) 2000헌마192 사건의 청구인들은(채○기 외 17인), 자신들이 1949. 12. 24. 경북 문경군 석달동에서 군인들에 의하여 학살되거나 상해를 입은 주민들의 유족 또는 생존자들로서, 그 날 군인들이 공비들과 내통했다며 주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주민 86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상해를 입는 집단학살을 자행했으나(이하 "문경학살사건"), 국가는 이에 대한 진상조사나 보상 없이 사건을 은폐하여 왔고 피학살자들의 호적에는 "공비출몰 총살로 인하여 사망"이라고 기재하였으며, 청구인들의 진상조사 및 피해보상 요구에 불응하거나 심지어 이를 탄압하여 왔다고 주장하였다.
(2) 2000헌마508 사건의 청구인들은(이○철 외 40인), 자신들은 1950. 11.부터 1951. 3. 사이에 전남 함평군 월야면, 해보면, 나산면등 3개 면에서 군인들에 의하여 학살된(이하 "함평학살사건") 수백명 주민들의 유족 또는 피해를 입은 생존자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지금까지 수 차례에 걸쳐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입법청원을 하였으나 이에 관한 아무런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3) 청구인들은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에 대하여 국가가 스스로 그와 같은 집단적 인권유린을 자행하고도 현재까지 아무런 진상조사, 명예회복, 피해보상에 관한 입법을 하지 않고 있는 입법부작위는 인간으로서의 존엄, 행복추구권, 알 권리, 배상청구권 등을 침해한다며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결정이유의 요지
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거하여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불행사에 대해서도 제기할 수 있으므로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도 허용된다. 그런데 입법부작위에는 입법자가 헌법상 입법의무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전혀 입법을 하지 아니한 진정(眞正)입법부작위와 어떤 사항에 관하여 입법은 하였으나 그 입법의 내용ㆍ범위ㆍ절차 등의 사항을 불완전ㆍ불충분 또는 불공정하게 규율함으로써 입법행위에 결함이 있는 부진정(不眞正)입법부작위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진정입법부작위는 입법부작위로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부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에는 그 불완전한 법규정 자체를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헌법위반이라는 적극적인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을 뿐 이를 입법부작위라 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례이다.
한편 진정입법부작위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려면, (1) 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을 위해 법률에 명시적으로 입법위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경우 또는 (2) 헌법 해석상 특정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입법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경우이어야 한다.
나. (1)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헌법상의 명시적인 입법위임은 없다.
제헌헌법 이래 우리 헌법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왔고, 이러한 입법의무에 따라 입법부는 국가배상법을 제정하여 왔다. 그런데 헌법은 그와 같이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는 법률을 제정해야할 입법의무를 규정하였을 뿐, 그밖에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의 피해자들의 진상규명과 손해배상 등을 위한 특별법과 같은 법률을 제정할 것을 위임하는 명문규정을 둔 바는 없다.
(2) 헌법해석상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입법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
헌법 제10조 제2문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근거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고 이를 최대한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지며, 만약 국가가 불법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그러한 기본권을 보호해주어야 할 행위의무를 진다. 또한 이러한 행위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국가가 관련 법률을 제정하여야 한다면 그러한 입법의무가 동 조항의 해석상 발생한다고 볼 것이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는 국방부 소속 군인들로 추정되므로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이 법적 근거가 없는 공권력의 남용행위였던 점이 인정된다면 국가는 그러한 범죄행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이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는 배상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형사소송법은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15년으로 하고 있어 이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사실상 수사가 곤란하다.
그리고 국가배상법상 시효는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인데, 이 사건 청구인들은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바가 없으며, 현재 시점에서의 손해배상청구도 불가능하다. 6·25전쟁과 뒤이은 반공주의가 지배하는 정치, 사회적 분위기에서 청구인들이 제 때에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고 보인다.
그러나, 비록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매우 중대하고 피해자의 범위도 넓어 상당한 특수성이 있지만, 이미 수사제도 및 국가배상법제가 마련되어 있는 이상, 그 외에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가의 입법의무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위한 국가의 입법의무가 헌법해석상 새로이 발생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으로 인한 피해의 중대성과 특수성을 고려할 때, 또한 피해자들이 적기에 국가에 대하여 가해자의 처벌을 요청하거나 배상청구를 할 수 없었던 사정을 고려할 때, 입법자가 그 입법형성의 재량으로서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상규명 내지 배상방법을 도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러한 입법의무를 헌법해석상 도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 한편, 청구인들은 거창과 제주도 지역의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서만 특별법이 제정되어 있어 평등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나,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원칙은 입법자에게 헌법적으로 구체적인 입법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며, 입법자가 평등원칙에 반하는 일정 내용의 입법을 하게 되면 이로써 피해를 입게 된 자는 직접 당해 법률조항을 대상으로 평등원칙의 위반여부를 다툴 수 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례이므로, 그러한 주장은 이유 없다.
라. 그렇다면 형사소송법상 국가 공권력에 의한 살인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와 국가배상법상의 청구기간이 너무 짧거나 불완전하여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과 같은 특수한 경우 효과적인 수사가 이루어질 수 없고, 손해배상청구권이 제대로 행사될 수 없는 것을 이유로 다투는 것, 즉 그 불완전한 법규정 자체를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헌법위반이라는 적극적인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피해배상 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지 아니한 부작위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소원 청구는 허용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으로서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부적법하므로 각하하는 것이다.
※재판관 권 성의 반대의견
나는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통상의 법적 구제수단이 타당할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에 대하여는 국회의 입법의무를 인정하여야 하고, 그런 점에서 입법부작위에 대한 종전의 헌법재판소 판례는 변경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누차 개진하여 왔거니와, 이 두 개의 사건은 군인들이 비전투과정에서 교전상대가 아닌 자국의 비무장국민들을 집단적으로 살상한 사건이므로 위 선례들의 사안에 비하여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의회의 입법의무가 더욱 더 강하게 인정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반대의견을 밝히는 바이다.
가. 전쟁이나 내란 또는 군사쿠데타에 의하여 조성된 위난(危難)의 시기에 개인에 대하여 국가기관이 조직을 통하여 집단적으로 자행한,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 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하여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 통상의 법절차가 제공하는 구제절차는 평상시의 일상적 분규에 의하여 야기된 권리침해 등에 대한 구제를 목표로 하여 제정된 것이므로 위난의 시기에 발생하는 국가조직에 의한 기본권침해와 같은 특수한 문제의 처리에 대하여는 그 규정이 제대로 들어맞지 아니하여 통상의 법절차는 그 적용이 배제되거나 기피되는 것이 십상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기본권침해의 사태를 야기한 국가권력이 집권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국가를 상대로 하여 개인이 적기(適期)에 권리를 행사하거나 통상의 쟁송을 제기하여 구제를 받는 것이 대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쟁 등 위난의 시기에 국가조직에 의하여 발생한 특수한 기본권침해에 대한 구제가 통상의 법체계에 의하여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 법부재(法不在)의 상황이 발생한 때에는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의회가 특별한 입법을 하여야 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고 이렇게 헌법을 해석하는 것이 헌법의 기본권보장 정신에 부합한다.
나. 이 사건에서 보면 6·25사변을 전후하여 문경 및 함평 지역에서 국군에 의하여 비무장의 어린이와 노인 그리고 부녀자들까지 포함된 무고한 많은 국민들이 사살된 사실이 추정되는데, 이는 이른바 국가조직이 자행한 개인의 기본권침해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이에 대한 진상조사나 보상을 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사건의 은폐를 시도하여 피해자들은 구제의 책임과 권능을 가진 국가기관 앞에서 그들의 주장을 이야기할 기회마저 두절되었던 정황이 인정된다.
문경학살사건은 언론에 일체 보도되지 않았고, 피학살자들의 호적에는 "공비출몰 총살로 인하여 사망"이라고 기재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옥석을 제대로 가려주지 않던 당시의 체제하에서 피해자나 그 유족 등은 국가에 대하여 진상조사나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4·19 후 비로소 문제제기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국회의 일부 진상조사가 있었으나 곧이은 5·16 군사쿠데타로 인하여 더 이상의 진전이 봉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3년에 들어서서 소위 문민정부 하에서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다시 요구하였으나 국회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1996. 1. 5. 거창사건등관련자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을, 2000. 1. 12.에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을 각 제정하는 것에 그쳤다(거창사건등관련자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은 그 규정형식이 마치 다른 지역의 민간인 피해까지 규율대상에 포함하는 것처럼 되어 있으나, 그 법률은 명예회복 중에서도 그나마 호적정리, 합동묘역관리와 같은 것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입법작위의무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사정을 보더라도 위난의 시기에 국가에 의하여 또는 국가의 비호나 묵인 하에 자행되는 기본권침해에 대하여는 국가배상법 등과 같은 통상의 법체계는 적절한 보장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은 국민을 보호하여야 하는 국가가 오히려 군병력을 통하여 무고한 아녀자와 노인까지 조직적으로 살해하였다고 의심받는 것으로서 만일 그렇다면 이는 집단살해에 유사한 행위(genocide-like act)이므로 집단살해와 같이 취급되거나 반인륜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로 취급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에 국가배상법상의 소멸시효 제도와 같은 통상적인 법체계는 적용이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전후한 혼란한 시기에 국가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진 또는 그 비호나 묵인 하에 이루어진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개인의 기본권침해가 있었고 이에 대한 구제가 통상의 법체계에 의하여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한 법부재적 상황이 발생한 때에는 헌법 제10조 제2문의 기본권보장의무를 근거로 하여 그 구제를 위한 의회의 특별한 입법의무(특히 국가배상청구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할 의무)가 발생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고, 이 사건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 이 사건에서는 청구인들이 생명과 자유권을 침해당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성질과 특수한 상황 때문에 구제의 책임과 권능을 가진 국가기관 앞에서 억울하다고 호소할 권리마저 사실상 봉쇄되고만 형적이 기록상 명백하므로, 청구인들의 기본권보장을 위하여는 국가의 추가적인 특별한 입법이 필요, 불가결하고 따라서 헌법해석상 기본권보장을 위한 국가의 「특별한 보호의무」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의회의 「입법의무」가 새로이 발생하였음이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
또한 의회의 보호의무 내지 입법의무에는 새로운 법률의 제정의무뿐만 아니라 기존의 관계법률을 개정할 의무도 포함되어야 한다. 기존의 관계법률을 개정하지 않고는 기본권의 침해를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경우를 의회의 보호의무에서 제외하여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법의 제정의무이든 기존의 관계법률의 개정의무이든 이러한 입법의무를 정당한 이유 없이 게을리하는 것은 모두 입법부작위에 해당하여 위헌확인의 대상이 된다.
라. 광풍노도와 같은 시련의 시기가 모두 지나가면 그 와중에서 불운을 겪은 일부 국민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보상하여 주는 것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문명국가의 마땅한 의무이고 이러한 의무는 의회와 정부의 책임으로 귀속된다. 시련을 당한 사람들의 피해를 특정인의 개인적 차원의 불행이라고 치부하여 버리는 것은 결코 건강한 사회의 법이 아니다.
전쟁으로 위축되었던 헌정질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의회가, 처참한 불운과 불행을 겪은 국민들을 구제하는 입법을 하는 것은, 국민을 다시 통합하고 국가를 전진시키기 위하여 의회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본적인 의무라고 할 것이다(국회도 답변서에서 그러한 의무의 존재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 날로부터 이미 50여년 이상이 경과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회가 아무런 특별입법이나 개정입법을 하지 아니한 것은 헌법이 요청하는 입법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사건발생 후 50여년이 경과한 이 시점에서조차 계속 입법을 지연하여 우리 국민의 일부인 이들 피해자나 그 유족들의 고통과 좌절을 방치한다면, 이는 '정의를 부정하는 것'(Justice Denied)과 동일한 '정의의 지연(Justice Delayed)'으로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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