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406조 제1항 위헌소원(합헌)(2007.10.25,2005헌바96)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金熙玉 재판관)는 2007년 10월 25일 채권자가 일정한 경우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에 이루어진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406조 제1항 중 ‘이익을 받은 자’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선고하였다. 이 결정에는 재판관 조대현의 한정위헌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재판관들 전원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1. 사건의 개요
가. 주식회사 상진케미칼(이하 ‘상진케미칼’이라 한다)은 신용보증기금과 신용보증약정을 체결한 후 신용보증서를 발행받아 이를 담보로 하여 중소기업은행 등으로부터 20억여 원을 대출받았고, 황○하는 상진케미칼의 신용보증기금에 대한 위 신용보증약정에 따른 구상금채무에 관하여 연대보증하였다.
나. 신용보증기금은 상진케미칼이 어음교환소의 거래정지처분을 받게 되자, 중소기업은행에게 상진케미칼의 은행 대출금 중 보증기한이 도래한 원리금을 대위변제함으로써 구상금채권을 가지게 되었고, 한편 황○하는 상진케미칼이 거래정지처분을 받기 직전에 청구인에게 매매를 원인으로 하여, 김포시 풍무동 소재 아파트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다.
다. 이에 신용보증기금은 위 구상금채권을 피보전채권으로 하여, 위 아파트에 관한 매매계약을 취소함과 아울러 위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내용의 사해행위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청구인은 위 소송 계속 중 위 법원에 신용보증기금의 사해행위취소권 행사의 법률상의 근거인 민법 제406조 제1항에 관하여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하였다가 그 신청이 기각되자 민법 제406조 제1항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2. 심판의 대상
청구인은 민법 제406조 제1항 전체를 심판대상으로 삼고 있으나, 청구인이 사해행위로 인하여 이익을 받은 자(수익자)이지 전득한 자가 아님이 명백하므로, 이 사건 심판대상은 민법 제406조 제1항 중 ‘이익을 받은 자’에 관한 부분(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으로 한정함이 상당하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법 제406조 (채권자취소권) ①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고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채권자는 그 취소 및 원상회복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행위로 인하여 이익을 받은 자나 전득한 자가 그 행위 또는 전득 당시에 채권자를 해함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3. 결정이유의 요지
가. 적법요건 부분
법무부장관 등은 사해행위취소소송에서 입증책임을 누구에게 부과할 것인가의 문제는 법률의 해석에 관한 문제이므로 이 부분 청구는 부적법하다고 주장하나, 청구인의 입증책임분배에 관한 주장은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한 해석을 다투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익자의 악의에 대한 입증책임을 청구인과 같은 수익자에게 부담시키는 이 사건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고 있는 것으로서 적법하다.
나. 본안에 대한 판단
(1) 채무자 및 수익자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와 수익자의 재산권 침해 여부
(가)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인정하고 있는 채권자취소권이 행사되면 채권자의 재산권인 채권의 실효성은 확보될 수 있는 반면, 채무자와 수익자간의 법률행위가 취소되고 수익자가 취득한 재산이 채무자의 책임재산으로 회복되게 됨으로써 채무자 및 수익자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 내지 계약의 자유와 수익자의 재산권이 제한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와 같이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둘러싸고 채권자의 재산권과 채무자와 수익자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 내지 계약의 자유 및 수익자의 재산권이 서로 충돌하게 되는 경우, 기본권의 서열이나 법익의 형량을 통하여 어느 한 쪽의 기본권을 우선시키고 다른 쪽의 기본권을 후퇴시킬 수는 없으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헌법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상충하는 기본권 모두가 최대한으로 그 기능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화로운 방법을 모색하되, 법익형량의 원리, 입법에 의한 선택적 재량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 심사하여야 할 것이다.
(나) 채권자취소권 제도는 채권자 보호라는 법의 정적 안정성과 관념적 권리인 채권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고, 이는 로마법 이래 대륙법계 및 영미법계 국가들의 대부분이 채택한 제도로서 그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채권자취소의 대상이 되는 법률행위를 채무자가 한 모든 법률행위가 아니라 그 중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로 한정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채권자를 해하는 법률행위, 즉 사해행위만을 그 대상으로 하며, 주관적 요건으로 채무자의 사해의사 및 수익자의 악의를 요하고 있다.
또한 채권자취소의 범위도 책임재산의 보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로 한정되고, 그 취소의 효과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악의의 수익자 또는 전득자에 대한 관계에서만 상대적으로 취소하는 것이므로, 채권자취소로 인하여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의 법률관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그리고 사해행위취소의 상대방인 수익자는 원상회복으로서 사해행위의 목적물을 채무자에게 반환할 의무를 지게 되지만, 채무자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 또는 담보책임의 추궁에 의하여 손해의 전보를 받을 수 있으며, 채권자취소권의 행사기간도 타국의 입법례나 일반 법률행위의 취소권 행사기간 보다 훨씬 단기간으로 정함으로써(민법 제406조 제2항) 법률관계의 조속한 확정을 도모하고 있다.
(라) 한편 입증책임규범은 사실의 존부불명의 경우에 법관으로 하여금 재판을 할 수 있게 하는 보조수단으로서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입증책임을 분배할 것인가는 입법자가 입증책임 분배의 기본원칙에 따라 정할 수 있는 입법형성의 영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입법자가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수익자의 악의를 채권자취소권의 장애사유로 정하였고, 이에 따라 대법원이 수익자의 악의에 대한 입증책임을 채권자가 아니라 수익자에게 있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은, 직접 거래의 당사자가 아닌 채권자가 수익자의 악의를 입증하게 하는 것보다는 직접적인 거래의 당사자인 수익자가 스스로의 선의를 입증하는 것이 훨씬 용이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서 그 합리성을 인정할 수 있다 할 것이다.
(마)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전체적으로 상충되는 기본권들 사이에 합리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 제한에 있어서도 적정한 비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여지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채무자 및 수익자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권이나 수익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2) 명확성의 원칙 위배 여부
청구인은 이 사건 법률조항이 수익자에 대하여 무엇에 관한 선의를 입증하라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아니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채권자를 해함을 알고’라는 의미는 사해행위의 객관적 요건을 구비하였다는 것에 대한 인식, 즉 ‘채무자의 재산처분행위에 의하여 그 재산이 감소되어 채권의 공동담보에 부족이 생기거나 이미 부족상태에 있는 공동담보가 한층 더 부족하게 됨으로써 채권자의 채권을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대법원도 이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달리 법관의 자의적 해석의 위험성은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4. 결 론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 재판관 조대현의 한정위헌 의견
채권은 원칙적으로 채무자에게만 주장할 수 있는 대인적 권리이고, 채무자의 다른 채권자에게는 채권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
민법 제406조는 이러한 채권의 본질과 효력에 관한 일반원칙의 예외로서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보전하기 위하여 채권자에게 채무자의 적법한 법률행위를 취소하고 그 상대방이 적법하게 취득한 권리를 부정할 수 있는 특별한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특별권능은 채무자의 재산처분권을 침해함과 아울러 수익자나 전득자가 적법하게 취득한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특히 필요한 경우에 최소한의 한도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헌법 제37조 제2항).
우선 채무자의 법률행위가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감소시키지 않거나 채무초과상태를 초래하지 않는 경우에는,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보전할 필요나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민법 제406조를 적용하여 채무자의 적법한 법률행위나 그 상대방이 적법하게 취득한 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다. 그리고 채무자의 법률행위가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감소시켜 채무초과상태를 초래하는 경우에도, 책임재산 감소로 인하여 초래된 채무초과의 한도에서만 채권자취소의 대상으로 될 수 있을 뿐이다.
다음에 민법 제406조에 의하여 수익자나 전득자로부터 이익을 반환시키는 범위도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감소시키는 행위로 인하여 수익자나 전득자가 받은 이익을 한도로 제한되어야 한다. 수익자나 전득자가 채무자의 재산을 무상으로 취득한 경우에는 그 재산 전부를 반환시킬 수 있지만, 시세보다 저렴하게 취득한 경우에는 정당한 시세보다 저렴한 한도에서만 반환시켜야 한다. 수익자나 전득자가 채무자의 재산을 정당한 시세로 취득한 경우에는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감소되었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하여 수익자나 전득자가 이익을 받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민법 제406조를 적용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채권자취소의 범위를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감소시키는 한도와 수익자나 전득자가 받은 이익의 한도로 제한하지 않으면, 민법 제406조가 수익자나 전득자의 악의를 채권자취소의 적극적 요건으로 규정하지 아니하고 수익자나 전득자의 선의를 면책요건으로 규정한 것을 합리화하기 어렵다.
그리고 채권자취소의 범위를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감소시키는 한도와 수익자나 전득자가 받은 이익의 한도로 제한하지 않으면,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보전하여 채권자를 보호한다는 법익에 치우침으로써 채무자의 재산처분권 및 수익자·전득자의 재산권에 대한 보호를 소홀히 하는 결과로 된다. 채권자취소의 범위를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감소시키는 한도와 수익자나 전득자가 받은 이익의 한도로 제한하는 경우에 비로소 두 가지 법익을 적정하고 균형있게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민법 제406조를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감소시켜 채무초과로 되는 한도나 수익자·전득자가 받은 이익의 한도를 넘어서 적용하는 것은 채무자의 재산처분권과 수익자·전득자의 재산권을 필요한 한도를 넘어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어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된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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